ストーリー
홍순관/싱어송라이터, 서예가로 한국에서 활동.
비영리법인 <춤추는 평화>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카야마조선학교 서예수업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홍순관/ 韓国で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書道家として活動。
非営利法人「踊る平和(チュムチュヌン・ピョンファ)」の代表を務める。岡山朝鮮学校の書道授業にも協力している。
80년 동안 꿋꿋하게 지켜온 자랑스러운 오카야마조선학교에 큰 감동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고마운 것은 한글서예를 지금까지 배우고 익히며 전시까지 이어온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소원이자 숙제인 남북이 만나는 통일까지 가는 길에 ‘한글’보다 더한 지름길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글서예 수업에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랍니다. 현재 유일하게 오카야마조선학교에 서예 수업이 남아있기 때문에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80年もの間、毅然(きぜん)と守り抜いてこられた誇り高き岡山朝鮮初中級学校に対し、深い感動と尊敬の念を抱いております。
さらにありがたいことは、ハングル書道をこれまで学び、身につけ、展示会にまでつなげてこられたという点です。私たちの願いであり宿題でもある、南北が出会う「統一」へと至る道において、「ハングル」以上の近道はないでしょう。これからもハングル書道クラスがさらに大きく発展していくことを願っています。
現在、唯一、岡山朝鮮学校に書道クラスが残っているため、力の一端を担えるよう、できる限り支援してまいります。
以下、김종목 기자(キム・ジョンモク記者)の取材記事です
오카야마조선학교 아이들의 ‘글씨는 나다 선생님’ 홍순관의 한글서예
岡山朝鮮学校の子どもたち「『字は自分自身だ』の先生」홍순관(ホン・スングァン)のハングル書道
김종목 기자2026. 2. 10. 14:48
キム・ジョンモク記者 / 2026年2月10日
평화운동가이자 싱어송라이터 홍순관은 2000년대 초중반 공연하러 일본의 여러 조선학교를 찾았다. 한 학교에 갔다가 머릿속에 각인된 건 복도에 걸린 한글서예 작품들이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전시를 기획할 때 그 작품들을 떠올렸다.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 글자 한글이 곧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죠.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미래인 아이들의 한글 글씨라고 생각했어요.”
平和運動家であり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の홍순관(ホン・スングァン)は、2000年代の初頭から半ばにかけて、公演のために日本にある複数の朝鮮学校を訪れた。ある学校を訪れた際、彼の頭に強く焼き付いたのは、廊下に掛けられていたハングル書道の作品たちだった。2019年の「三・一独立運動」100周年に向けた記念展示を企画したとき、彼はその作品のことを思い出した。
「南北が共に使う私たちの文字『ハングル』は、まさに統一と平和の象徴です。その中でも最も重要なのは、私たちの未来である子どもたちのハングルの筆跡だと考え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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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조선학교들이 2022년 11월 자신들이 쓴 한글서예 작품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홍순관 제공
(写真説明:2022年11月、自分たちが書いたハングル書道の作品を見ながら楽しむ岡山朝鮮学校の児童たち。홍순관氏提供)
지인들을 통해 서예수업을 하는 조선학교를 수소문했다. 서예수업이 거의 사라졌다는 말만 들었다. 다시 물어물어 찾아낸 곳이 오카야마조선학교다. 일본 40여 곳 조선학교 중에 서예를 정규과목에 넣어 배우는 곳은 오카야마조선학교 단 한 곳이다. 그해 겨울 이 학교를 찾아 서예수업을 참관하고, 교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80년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글, 우리말, 우리 얼(정신)을 지키려고 배우고 애써온 오카야마조선학교 학생들의 한글서예는 존재 그대로 우리 역사, 우리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순관은 “우리나라에도 서예 수업이 정규적으로 있는 곳은 이제 찾기가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순관은 이후 8년째 이 학교와 한글서예 교류를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왕희지와 구양순의 대가였던 아버지 의연(毅硯) 홍종욱에게 글씨를 배웠다. 홍순관은 중학교 때 전국 휘호 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그가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한 건 서예는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쓰는 일이라는 점이다. “‘글씨’는 글의 씨앗 곧, 정신이니 ‘정신을 쓰는 일’이고, 또 ‘글씨는 나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말씨도 다르고 마음씨도 다른데 글씨도 사람마다 달라야 자연스럽다고 했죠.” 그는 “이듬해 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 한 아이가 복도 끝에서 ‘글씨는 나다 선생님!’하며 인사를 할 때 울컥했다”고 말했다.
知人を通じて、書道の授業を行っている朝鮮学校をあちこち探した。しかし、返ってくるのは「書道の授業はほとんど姿を消した」という言葉ばかりだった。粘り強く探し回った末に見つけたのが、岡山朝鮮初中級学校だった。日本に40以上ある朝鮮学校の中で、書道を正規の科目に組み込んで教えているのは、岡山朝鮮学校ただ一箇所だけだった。
その年の冬、彼は同校を訪れて書道の授業を参観し、教師や生徒たちと言葉を交わした。
「80年もの間、あらゆる困難の中で私たちの文字、私たちの言葉、私たちの魂(精神)を守ろうと学び、励んできた岡山朝鮮ハッキョの生徒たちのハングル書道は、その存在自体が私たちの歴史であり、未来だと感じました」 洪氏は「韓国国内でも、書道の授業が定期的に行われている学校を見つけるのは今や難しい」と言い、当時を振り返った。
それ以来、洪氏は8年間にわたり同校とのハングル書道交流を続けてきた。時には生徒たちに書道を教えることもあった。
実は彼自身も書家の一人である。王羲之(おうぎし)や欧陽詢(おうようじゅん)の大家であった父・毅硯(ウィギョン)홍종욱(ホン・ジョンウク)から文字を習い、中学校時代には全国の席書(揮毫)大会で2位に入賞した実力を持つ。
彼が朝鮮学校の生徒たちに会うたびに強調したのは、「書道とは単に文字(文字の形)を書くのではなく、字(心の形)を書くことだ」という点だ。 「韓国語の『文字(クル)』に『種(シ)』がついた『字(クルッシ)』とは、いわば『精神を書くこと』であり、『字は自分自身(私)』なのだと伝えました。話し方も心も人それぞれ違うように、字も人によって違ってこそ自然なのだ、と」 彼は「翌年、学校を再訪したとき、ある子が廊下の向こうから『「字は自分自身だ」の先生!』と挨拶してくれたときは、胸が熱くなりました」と語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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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가 홍순관은 2019년부터 매년 일본 오카야마조선학교와 한글서예 교류를 해오고 있다. 사진은 2025년 10월 교문에서 촬영했다.
(写真説明:平和運動家の홍순관氏は2019年から毎年、日本の岡山朝鮮学校とハングル書道交流を続けている。写真は2025年10月に校門で撮影)
2022년 유치부, 초급부, 중급부 학생 전원(74명)에게 꽤 좋은 붓을 선물한 일도 떠오른다. 교장과 서예 교사가 붓마다 모든 학생 이름을 각각 새겨 나눠줬다. “지금도 중요한 작품을 쓸 때만 꺼내어 쓴다고 했다. 아끼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 찡했죠.”
“왕희지의 우아함과 추사의 자유로움”을 즐기던 홍순관은 2010년대 중반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글을 가장 품위 있고 섬세하게 표현할 장르는 서예”라고 말했다. 한글을 두고는 “모든 사람이 시대 상황과 시대정신을 깨닫게 하려고 만든 글자다. 바로 그 한글을 쓰는 것이 한글서예”라고 했다. “옛날 시구나 격언에 갇히는 것은 서예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일이죠. 시대와 동떨어지거나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남의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것도 서예 정신과 거리가 멀고요.” 그는 “동시대 일이나 통일, 환경, 자본과 빈부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바로 서예의 나아갈 길”이라고도 했다.
2022年、幼稚部、初級部、中級部の全校生徒(74人)に、上質な筆をプレゼントしたことも思い出深い。校長と書道の教師が、その筆一本一本にすべての生徒の名前を刻んで手渡してくれた。 「今でも大切な作品を書くときだけ、大切に引っ張り出して使っているそうです。大事にしてくれているのは嬉しい反面、どこか胸が締め付けられるような愛おしさを感じました」
「王羲之の優雅さと추사、金正喜(キム・ジョンヒ=秋史)の自由さ」を好んでいた洪氏が、ハングル書道の美しさに目覚めたのは2010年代の半ばだったという。 「ハングルを最も品格高く、繊細に表現できるジャンルこそが書道です」と彼は言う。
また、ハングルについて「すべての人が時代の状況と時代精神を悟るために作られた文字。まさにそのハングルを書くことこそが、ハングル書道です」と語った。 「昔の詩や格言(の枠)に閉じこもることは、書道の本質から遠ざかることです。時代とかけ離れていたり、他人の字を真似たり、他人の文章をそのまま書くことも、書道精神とは距離があります」 彼はさらに、「同時代の出来事や統一、環境、資本や貧富の差などを美しい文章にして書くことこそが、これからの書道が進むべき道です」と付け加え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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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관(사진 왼쪽)이 2022년오카야마조선학교 서예 교사와 함께 학생들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홍순관 제공
(写真説明:2022年、岡山朝鮮学校の書道教師と共に生徒たちの作品を鑑賞する홍순관氏(ホン・スンガン氏)(写真左)。홍순관氏提供)
홍순관은 1994년부터 10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대지의 눈물’ 공연을 진행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 용산참사 현장, 제주 강정마을, 세월호 팽목항 현장을 찾아다녔다. 미국 현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초청으로 시카고 애틀랜타 등지에서도 공연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과 함께 평화공연도 진행했다. 이 평화운동가 홍순관은 ‘평화예술 박물관’을 직접 짓고 싶어한다. “이곳에 들어갈 전시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한글서예입니다.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 글자 한글이 곧,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이죠.”
2019년 이루지 못한 조선학교 학생들의 한글서예 전시는 올해 실현됐다. 홍순관이 대표로 있는 ‘춤추는 평화’와 한빛누리재단은 3·1절 기념 및 평화통일 기원 서예전에 오카야마조선학교 학생들 붓글씨와 연필글씨 작품 60점을 내건다. 서예전 타이틀은 ‘글씨는 나다’. 홍순관도 한글 서예 작품 5점을 출품했다.
洪氏は1994年から10年間、元慰安婦被害者たちのための公演「大地の涙」を企画・進行してきた。大秋里(テチュリ)の米軍基地反対運動、龍山(ヨンサン)惨事の現場、済州島(チェジュド)の江汀(カンジョン)村、セウォル号のペンモク港など、社会の痛みの現場を巡ってきた。アメリカの「セウォル号を記憶する人々」の招待により、シカゴやアトランタなどでも公演を行った。ベトナムの枯葉剤被害者たちとも平和公演を行っている。
この平和運動家・홍순관氏には、自らの手で「平和芸術博物館」を建てたいという夢がある。 「そこに展示する物の中で最も重要なのが、まさにハングル書道です。南北が共に使用する私たちの文字ハングルが、そのまま統一と平和を象徴しているからです」
2019年には叶わなかった朝鮮学校の生徒たちのハングル書道展が、今年ついに実現した。洪氏が代表を務める「踊る平和(チュムチュヌン・ピョンファ)」とハンビンヌリ財団は、三・一独立運動記念および平和統一祈願書道展に、岡山朝鮮学校の生徒たちの毛筆・鉛筆による作品60点を展示する。
書道展のタイトルは「字は自分自身だ(クルッシヌン ナダ)」。洪氏自身もハングル書道の作品5点を出品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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